본문 바로가기
이슈

2. 인류학의 분류 인류학의 역사 알아보기

by 열생 2022. 7. 6.
반응형

안녕하세요 열생입니다 

오늘은 저번과 마찬가지로 이어지는 인류학의 분류 인류학의 역사에 대해서 같이 

알아볼 예정입니다 클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사에 따른 구분

현대 인류학은 수많은 갈래로 퍼져나가고 있으며, 그중 21세기 초기에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분야 학문 중 개발인류학의료인류학 등이 있다.

인류학은 영국에 전통을 둔 사회인류학, 국에서 발전해 온 문화인류학,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을 중심으로 형성된 민족학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 1800년대 진화론의 발상과 인종적 분류법 - 스펜서, 타일러
  • 1600년대 루소 로크의 인식론적 접근법
  • 1900년대 초기 보아스
    • 보아스는 많은 제자를 두었으며 미국 인류학계의 아버지라 불린다. 그와 그의 제자들은 다양한 문화에 대한 조사기록을 축적했으며 미대륙 인디언의 문화 보존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한편 1920년대에 영국에서는 식민지에 대한 통제가 문제시되면서 사회의 안정을 연구하는 구조주의 기능주의 인류학이 말리노프스키 래드클리프브라운에 의해 대두되었다.
  • 기능주의
  • 영국 구조주의
  • 구조기능주의
  • 탈근대론
  • 상징주의
  • 신근대

 

인류학의 역사

19세기 이전

현대 인류학은 대륙발견시대에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 기술적으로 발전해 있던 유럽 문화는 다양한 토착문화와 폭넓게 접촉하게 되었는데, 유럽인들은 이 문화들을 일괄적으로 '야만' 또는 '원시' 문화로 규정했다고합니다.

19세기

19세기 중반에 학문에 대한 종교적인 통제가 약화됨에 따라 인간의 기원, 인종 분류, 비교해부학, 언어와 같은 주제가 유행했고, 1859년 다윈이 〈종의 기원〉 출판을 통해 공식적으로 진화 개념을 언급함에 따라 인류발전과 시간의 흐름에 따른 사회·문화 발전에 대한 연구가 크게 활성화되었다. 당대 유행하던 주제와 비교의 관점, 진화론·우생학 등 학문의 지적 유산에 영향을 받은 인류학은, 친족형태의 진화, 문명의 진화, 종교의 진화 등을 중심적으로 연구하며 인종주의  제국주의의 발흥에 기여하기도 했다. 같은 시기에 마르크스와 그 영향을 받은 사상가들은 그와는 다른 사회진화론을 주장했다. 마르크스의 이론에 따르면 한 사회의 경제적인 생산양식이 일련의 지배원리를 결정한다. 이 때 (19세기 후반) 주류였던 인류학은 단선적인 역사개념을 토대로, 모든 인간집단은 문화적인 진화의 특정 단계들, 즉 '야만' 또는 '미개' 상태를 거쳐 '문명인'(예를 들면 서구 유럽인) 단계로 발전하게 된다고 설명했다.이 지배원리는 생산양식이 변한 후에도 한동안 지체되는 것이 특징이며, 그결과 지배원리와 생산양식 사이에 갈등이 일어남으로써 새로운 사회질서가 생긴다. 이러한 통일된 이론들은 여행가·상인·선교사 들이 수집한 지식을 바탕으로 씌어진 프레이저 경의 〈황금가지 The Golden Bough〉(1890) 같은 대중적인 저서와 달리 몇 년 안 되어 학문적으로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

형질인류학

문화인류학이 독자적으로 하나의 성숙한 사회과학 분과로 발전하는 동안 형질인류학은 자연현상에 차지하는 인간의 위치를 규정하고, 다양한 인간종족의 신체적인 차이를 분류하는 일에 계속 관심을 두었다. 사람과 다른 영장류 사이의 차이를 알아냈고, 19세기 후반 다윈의 진화론이 일반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진 가운데, 형질인류학자들은 고대인류를 추적하는 데 고고학자들과 고생물학자들의 발굴 성과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20세기

20세기가 시작되면서 서구 유럽과 북아메리카 초기 인류학자들이 갖고 있던 강한 문화적인 편견이 점점 사라지고, 사회와 문화의 폭넓은 다양성에 대한 다원론적이고 상대주의적인 견해가 우세하게 되었다. 문화적 상대주의에 바탕을 둔 이 입장은 모든 문화를 물리적 환경, 문화적 접촉, 그밖의 다른 여러 가지 요소들의 독특한 산물로 파악했다. 이러한 견해에 뒤이어 경험적인 자료, 현지조사, 일정한 문화적·자연적 환경 안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행동에 관한 구체적인 증거를 강조하는 경향이 생겼다. 이러한 접근방법을 행한 가장 주요한 본보기가 된 사람은 문화사학파의 시조로 알려진 독일 태생 미국의 인류학자 보아스였다. . 보아스와 베네딕트, 미드, 사피어 등 그의 제자들은 20세기 전반을 통해 미국 인류학의 주류를 형성했다. 문화사학파는 문화적인 자료에 기능주의적인 방법으로 접근하여 한 문화에 속한 여러 다양한 양식·특징·관습을 조화시켜 표현하려 했다. 한편 프랑스의 경우 파리 대학교의 민족연구소 설립자인 모스는 인간사회를 자기조절 할 뿐 아니라, 1900년 초기에 그는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진화론을 부정하고 고전적 인류학의 근간이 되는 네 가지 접근법 (언어학고고학문화인류학 그리고 체질인류학)의 기초를 닦았다 문화통합체계를 보존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총체적인 체계로 보는 입장에서 연구를 진행시켰다.

모스는 프랑스의 레비스트로스, 영국의 말리노프스키 래드클리프브라운과 같이 이질적인 접근방법을 꾀한 이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반면 구조주의자들은 사회구성원들이 신화와 성징을 통해서만 인식하는 폭넓은 현상의 구조적 성격 및 대상을 알아내려 했다.

말리노프스키는 계속 엄격한 기능주의적인 접근방법을 추구했으며, 래드클리프브라운과 레비스트로스는 구조주의 원리를 발전시켰다. 두 학파는 사회사를 사회이론의 토대로 보지 않는 점을 제외하고는 별개의 방향으로 발전했다. 기능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사회현상을 분석하는 단 하나의 타당한 방법은 그 현상이 사회에서 수행하는 기능을 규정하는 것이었다. 

1930년대에 베네딕트가 행한 미국 남서부 인디언에 관한 연구를 통해 문화심리학이라는 문화인류학의 파생분야가 생겨났다. 베네딕트의 주장에 따르면 문화는 천천히 발전하면서 구성원들에게 독특한 '심리적인 성격'을 갖게 하는데, 구성원들은 환경적인 요소에 상관없이 문화를 통해 정해진 방향을 따라 현실을 해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전통사회는 물론, 현대사회의 문화적인 '통합' 또는 가치체계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는 것처럼 문화와 인성(人性)의 상호관계는 폭넓은 연구주제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반응형

댓글